seijitsu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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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학자 뒤르껭은 사회가 근대로 발전될수록 형법보다 민법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직관적인 잔인한 폭력보다 소송 등 겉으로는 야만적이지 않은 방법들이 시스템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송 같은 방식이 겉보기처럼 실제의 폭력성을 감소시킨 것은 아니다. 노동자 손배소처럼, 사실상 더욱 잔인하고 피를 말리는, 폭력의 강도는 다름없다. 그러나 ‘세련된’ 시스템은 그 폭력성을 감췄다.

2. 계급의 전승도 세련되게 바뀌었다. 부모신분의 자녀에게로의 대물림되면서 사실상 신분제와 동일하게 작동한다. 인간의 무의식적 성향을 말하는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는 계급과 계층의 경계를 나눈다. 

3. 우리사회에서 ‘신분의 대물림’에 활용되고 있는 시스템은 바로 ‘교육’이다. 전근대적인 신분의 계승을 마치 자유롭고 공정한 계승처럼 여겨지게 만든다. 형법에서 민법으로의 전환처럼, 교육은 부와 신분의 대물림을 ‘보이지 않게’ 지원한다.

한때 교육이 신분상승의 공정한 통로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가족단위의 생존은 장자에게 교육받을 기회를 부여하고, 장자는 가족의 절대적 지원을 등에 업고 교육을 통해 신분상승을 꾀했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이 나면, 평민은 양반이 될 기대감에 부풀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전쟁 이후 사회가 자리를 잡아 나가면서, 교육은 신분상승의 통로가 아니라 신분 대물림의 기제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가끔 용이 된 이무기가 회자되고, “교과서로 공부했어요”와 같은 미덕(?)이 회자되면서, 교육은 여전히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처럼, 누구나 열심히 한다면 승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을 것처럼 ‘믿어졌다’. 그러나 현실이 그랬나?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학습 방법은 계층 간 경계를 타고 나뉜다. 재력과 정보력은 계층의 경계를 따라 차등적으로 제공된다. 아래에서 위로건, 위에서 아래로 건, 간혹 이 경계를 뚫고 나간 이들은 마치 지금의 시스템이 ‘공정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발휘했을 뿐이다.

신임 법무부장관, 또는 그 가족이 자녀 입시에 어떤 일을 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상류층들이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식의 호들갑을 보노라면 구역질만 나온다. 설령 장관 가족이 잘못을 저질러 엄정한 법의 처벌을 받게 되더라도, 그것이 이 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이 호들갑의 진짜 문제는, 누구나 시스템의 문제를 제기하지만, 그것을 해결할 의지는 위선적이라는 점이다. 오늘 대통령의 담화는 “고교서열화와 대학입시의 공정성 등 기회의 공정성을 헤치는 제도”를 다시 살피겠다는 말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고교서열화와 대학입시의 공정성이 핵심은 아니다. 고교서열화와 대학입시의 공정성이 침해되는 원인은 따로 있다.  대학 브랜드별로 서열화되어 있고, 이 브랜드 획득이 향후 삶의 진로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한, 어떤 입시정책도 신분재생산의 거수기일 뿐, ‘공정성’은 불가능하다. ‘똑같은 기회’라는 것이 평생을 불공정한 기회를 주면서, 시험 보는 서너 시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또 다시 그러나, 이 거대한 시스템을 바꿀 의지가 누구에게 있을까? 현재의 시스템에서 이득을 보는 이들이 그것을 없앨까?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형성되어 있는 ‘교육시스템을 활용한 신분의 고착화와 재생산’을 누가 깨려고 할까?

신임장관의 입시 부정의혹을 제기하며 큰 소리 외치고 있는 이들이? 그 시스템으로 좋은 대학을 나와 영향력 있는 위치에 서게 된 자들이? 아니면, 여전히 자신도 이 시스템을 타고 위로,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으며 시스템의 충실한 수호자가 된  욕망덩어리들이?  

형법에서 민법으로의 전환이 잔인성 폭력성을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었듯, 지금의 교육은 이 고질적 지배구조와 재생산을 ‘보이지 않게’ 바꾼다. 마치 빈곤과 궁핍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눈 앞에서 치우듯, 한국사회의 교육은 원래부터 불공정한 시스템을 보이지 않게, 공정한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시스템을 건들지 않고서, 무엇인들 이루어 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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