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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파의 도덕무용론 / 율법폐기론

이인규

 

율법주의와 율법폐기론은 모두 극단적인 구원론이다.

그래서 마틴로이드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이 바로 성화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죄를 완전히 제거했다거나 죄로부터 완전히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모든 것들을 반드시 거절해야만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동일하게 반동의 원리 또한 거절해야만 합니다.” (로이드존스, 성령하나님, 기독교문서선교회, 330쪽)

 

“우리는 죄를 완전히 제거했다거나 죄로부터 완전히 구원받았다”고 하는 주장이 소위 도덕무용론, 율법폐기론이며, 동일한 반동의 원리는 행위구원론이다.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지 못했다거나 죄가 제거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말한다.

 

정통신학적인 견해는 Already but not yet의 구원 개념을 갖고 있으며, 어느 순간적인 커트라인을 말하지 않는다. 특히 구원파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이미 받은 구원만을 강조하며, 현재의 구원과 장래의 구원에 대해서는 부정을 한다. 특히 스스로 자신이 깨닫는 구원의 확신을 이미 구원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며, 스스로 거듭난 것으로 생각한다.

 

“복음을 깨닫고 믿는 순간에 영생을 얻은 것이다. 영생은 죽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을 때에 얻는 것이다” (이요한, 구원의 삼단계, 15쪽)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성경은 인간의 타락하여 스스로 깨닫는 자가 없다고 말한다.

 

롬 3:10-11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R.C. 스푸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크리스천이 된 날과 때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꼭 집어서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의심스럽게 바라본다. 그러나 믿을 만한 기독교 가정과 교회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에게 후자의 경우는 흔하다. 중생하는 것과 중생을 인식하는 것은 동일한 일이 아니다. 중생은 하나님의 객관적인 행위다. 중생을 인식하는 것은 중생한 자의 주관적인 반응이다. 분명 중생은 결정적인 사건이지만, 성경 어느 곳에도 사람에게 즉각 성령님을 인식하라고 요구하는 데는 없다. 자신의 경험을 기독교 공동체 전체의 표준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은 큰 해악을 초래한다. 신령한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회심한 때가 아니라 사람이 회심했다는 사실이다.” (정말 그렇게 믿습니까? R.C. 스프룰)

 

중생(거듭남)은 인간의 깨달음이 아니라, 전적인 성령의 역사이다.

또 구원파에서는 인간을 살아서 영과 육으로 분리하여, 영의 구원과 육의 구원으로 구별한다. 즉 영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 죄가 없으며, 성령이 거하는 거처이며, 육체는 죄가 있고, 마귀가 역사하는 장소적인 분리된 곳이라고 주장한다.

지방교회와 기독교복음침례회(권신찬)에서는 구원을 영의 구원과 혼의 구원, 육의 구원의 세 단계로 분리하였으나, 이요한계열은 영혼의 구원, 생활의 구원, 몸의 구원으로 분리하였으며, 그러나 용어만 다를 뿐 그 개념은 동일하다.

 

이미 받은 구원만을 강조하다보니, 자연히 현재 지은 죄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게 되는데, 생활에서 지은 죄에 대해서는 이미 받은 구원의 강조 때문에, 구원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는 스스로의 개인적인 확증이 곧 구원이 되며, 거듭남이 되기 때문에, 죄와 더 이상 관계가 없는 단정, 즉 하나님 대신에 자기자신이 심판을 선포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일반 기독교에서는 자기 스스로의 개인적인 깨달음이나 자기 확신을 곧 구원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모든 이단들은 구원에 대해서 폐쇄적이며 독단적이므로 그들은 다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일반기독교에서 깨달음은 구원의 종료가 아니라, 구원의 시작이며, 중요한 것은 올바른 깨달음을 가져야만 건전한 신앙의 시작을 할 수 있다.

 

정작 구원파 교회는 비판에 봉착하자 변명을 하는데, 자신들은 “죄를 지어도 좋다”라고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변명에 불과하다. 구원파가 죄를 지어도 좋다라고 가르친다면 그들은 이단이 아니라 사이비단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파에서는 스스로의 구원의 자의적인 단정이 곧 죄사함의 종료가 되어지며. 이미 받은 구원이 되고, 실제로 그렇게 가르친다.

고린도전서 5장이 바로 그러한 주장을 증거하게 된다.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전5:5)

고린도교회에서 어떤 교인이 아비의 아내를 범하였다는 것을 바울이 알았다.(고전5:1) 아비의 아내라고 하면 어머니가 되는데, 표현으로 보아서는 친모(親母)는 아닌 듯 싶다. 고린도지역에서는 일부다처 풍습이 있었고, 어찌 되었든 그리스도인이 가족을 범하는 음행을 저지른 것이다.

구원파교회에서는 고린도전서 5장 본문으로 일단 구원을 받은 사람은 어떤 죄를 지어도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성경적인 근거로 위의 성경본문을 제시한다.

일단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자는 어머니를 범하는 음행을 저질러도 그 영은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도덕 무용론(無用論)이 된다.

구원파에서는 어떤 죄를 지어도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소위 도덕무용론을 자신들은 가르치지 않는다고 반박과 변명을 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해석을 가르친다면 그것이야말로 도덕무용론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는 중대한 실수를 할 수가 있는데, 보편적이며 일반적인 성경구절을 굳이 외면하고, 극소수의 난해한 한 구절만을 받아 들임으로서, 그러한 특수한 경우를 보편적인 경우로 간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로 이단이라고 불리는 교회들이 그런 해석을 많이 한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기독교복음선교회(권신찬)도 그렇게 가르쳤으며, 이요한씨도 그렇게 가르쳤다.

 

“(고전 5: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런 사람을 사탄에게 내주어 버리면 죽어 버립니다. 그것은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 죄도 죽는 징계를 말하지만 영원히 멸망받는 것은 아닙니다. 지옥 갈 죄를 사함 받은 것은 완전한 것입니다. 완전히 죄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은 사실이다. 권신찬, 기독교복음침례회, 399쪽)

 

아래는 이요한씨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었던 글이다.

 

“구원을 받은 사람이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영혼이 지욕에 가는 죄가 아니라 육신이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다는 말입니다. (고전 5:5)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어서는 안될 죄를 지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 육신을 멸하기도 합니다. 징계로 질병에 걸릴 수도 있고, 심하면 죽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주님 앞에 가서도 심한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이요한씨 홈페이지)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이 가만히 놓아두신다. 조금 있다 지옥 갈테니까 내버려 두시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이 잘못 하면 하나님이 가만 놔두시지 않는다. 만일 구원받았다는 사람이 거짓말하고 남을 속였다면 몇배의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남의 돈을 떼먹었으면 몇배를 잃게 하시고 바른 길로 가도록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거기에 따른 징계가 있다.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죄지만, 하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도 죄이다. 거듭난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지 않고 하지 않아야할 일을 하게되면 물질적으로나 육신적, 정신적, 신앙적으로 징계가 있고 심할 경우에는 육신을 죽이기까지 하신다. 그러므로 징계가 있음을 두려워해야 한다.(구원의 삼단계, 이요한, 생명의말씀선교회, 32쪽)

다음은 여러 가지의 성경번역본이다.

[공동번역] 그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 주어 그 육체를 멸망시키도록 판결한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날에 그의 영혼은 구원을 받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그러한 자를 사탄에게 넘겨 주어서, 그 육체는 멸망을 당하고, 그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해야 할 것입니다.

[현대인의성경] 이런 사람을 사탄에게 넘겨 주어 육체는 파멸되더라도 영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구원받게 하십시오.

[KJV] To deliver such an one unto Satan for the destruction of the flesh, that the spirit may be saved in the day of the Lord Jesus.

[NIV] hand this man over to Satan, so that the sinful nature may be destroyed and his spirit saved on the day of the Lord.

개역개정을 포함한 한글 성경들은 모두 주님의 날에 구원을 받도록 한다, 얻게 해야 한다는 장래시제로 번역하였다. 또 영어성경은 may be라고 번역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 성경구절이 “영은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과거시제로 해석이 되며, 이런 사악한 죄를 지어도 육체만 징계를 받고 영의 구원은 변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되는가?

일반 기독교에서는 이런 사람들은 비록 교회를 다니는 교인이지만, 구원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구원파에서는 구원의 확신을 스스로 깨닫는 시간으로 보기 때문에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시간이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고 이미 거듭난 것이 되어 버린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의 책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사를 확인할 수 있어야만 한다.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고 보존하게 하여 우리에게 전하신 첫째 이유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함이 분명하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사를 확인할 수 있어야만 한다.

고전 5:5의 전통적인 성경해석은 다음과 같다.

1. 고전 5:5을 교회의 권징에 대한 해석으로 본다.

즉 음행을 저지른 교인을 교회에서 축출하라는 것이다.

사탄에게 내어 준다는 말의 뜻은 교회에서 징계를 받고 제명 또는 추방, 출교를 의미하며, 구체적으로는 성령의 보호를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2절, 6-8절, 13절에서도 그 사건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언급된 바 있기 때문에 매우 타당성있는 해석이라고 보여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고전5:2)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5:6-7)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전5:13)

2. 육체를 멸하게 한다는 구절은 육체적인 고통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예를 들면 큰 병에 걸렸다거나, 예를 들면 수족을 절단하는 큰 사고를 입든지 하는 육체적인 징계를 당하는 경우를 말한다고 본다.

“멸하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올레드로스”인데 “죽는다”는 뜻 외에 다른 구절에서 그 단어는 “징계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살후1:9, 딤전6:9)

즉 음행을 저지른 자가 징계 혹은 벌을 받아서 육체적인 고통을 받고 결국 죽게 되겠지만, 당사자는 하나님께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회개를 하게 되고, 그러므로 그는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과연 교회를 떠난다고 병이 들거나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가?

이러한 해석의 근거로 다음 성경구절을 예로 들기도 하며, 또 초대교회는 사도들에 의하여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았던 상황이며, 성령의 직접적이며 초자연적인 역사가 사도들에 의하여 있었던 상황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사도 바울은, 주의 만찬을 분변치 못하다가 약한 자와 병든 자가 있었고, 심지어는 죽은 자도 있었던 것이며 이러한 것은 주님께 징계를 받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1:32)

또 다른 견해로는 음행자를 로마정부에 고발하여 육체적인 징벌을 받게 한다는 견해도 있는데, 사단을 로마정부로 비유하였다는 해석이다.

그 당시 로마법도 가족의 음행은 명백한 범법행위였으며, 이 음행자가 로마당국에 의하여 육체적으로 징벌을 당하게 하면 그가 회개함으로서 종말적으로 영은 구원을 얻을 수도 있도록(may be) 한다는 견해이다.

3. “영”이란 단어는 헬라어 본문에서는 “그의”(His)라는 대명사가 빠져 있다.

다시 말하여 사악한 죄를 지은 사람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하고 추방당한 당사자가 누구이든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하며, 바울은 교회의 권징이 이러한 목적으로서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고 본다.

즉 첫째 본인 당사자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징계를 하는 목적과 둘째, 다른 사람에게 그러한 악행이 전파되지 않게하기 위하여 제명 혹은 추방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문에서 영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주 예수의 날이며, 즉 예수가 재림하셔서 심판을 하시는 궁극적인 장래를 말한다. 사도바울은 여과 육의 구원을 분리한 것이 아니라, “죄많은 육신, 본성”이 징계를 받고 회개하게 되면 “영”으로는 다시 거듭나게 되어 살게 된다는 의미이며, 장래적인 의미(주님의 날에)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NIV는 sinful nature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영어성경은 육체는 징계를 받아도 이미 영은 구원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장차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영은 구원을 받을 수도 있다는 maybe로 번역하였다.

물론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으면 반드시 구원을 받게 하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믿는다. 또한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적 사역이시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음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첫째, 우리가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고 단정하는 자기 구원이 끝까지 윶된다는 것은 아니며, 둘째, 성경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자는 어떤 죄를 지어도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으며, 음행자가 구원을 받는다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만일 음행자도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은 헛된 말로 속이는 것이 된다고 바울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5장에서는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음행자를 교회에서 쫓아내라고 분노하면서 꾸짖고 있다. 그런데 후대의 사람들은 바울의 의도와는 달리, 어머니를 범하는 음행을 저질러도 그 영은 구원을 받는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엡 5:5-7)

 

 

출처 : 네이버 카페 /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 원본 글 링크는 아래 링크.

 

https://cafe.naver.com/anyqu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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