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ijitsu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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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습니다. 

사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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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글을 읽어 보세요. 

 

 

 

기독교를 신앙으로 가지고 있는 과학자들이

창조론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광신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에서만 통용되며,

실제 자유주의 또는 비근본주의 기독교에서는

그런 짓을 강요하진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기독교가

미국에서 유래된 광신적인 원리주의

(문자주의/복음주의/근본주의/세대주의)에

푹 빠져서 전세계 기독교가 다 그런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게다가 일부 자칭 기독교인(과학자 포함)들이

자신들의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다른 수 많은 좋은 방법들을 놔 두고 하필

창조론을 믿는 것이야말로

믿음의 증명이라는 식으로 착각하면서

떠드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는 좀 상황이

황당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과학자를 떠나서

그냥 보통사람으로서도

창조론을 믿으려면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 짓을 하려면 생물학 뿐 만이 아니라

현재의 지질학, 고고학, 천문학, 물리학 등을

전부 부정해야 하죠.

인류가 정립해 온 모든 지식과 기술을 철저히 부정하고,

비상식적인 사람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 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이 과학들의 모든 분야에 무식하거나

심지어는 창조론 자체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창조과학회 게시판등을 살펴보면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글들이 있는데

전산학 교수가 유전학이 어쩌고 저쩌고

병원 방사선과장이라는 사람이

지질학이 어쩌고저쩌고,

물리학 교수란 사람이 천문학이 어쩌고저쩌고......

 

그런데 실제 그 전공자들이 보면

기본 단어들조차 이해 못한 엉터리 주장들이 대부분이죠.

 

이런 것들을 혹시 기독교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착각해서 그냥 놔두는

우리나라 기독교계는 더 큰 문제입니다.

 

거짓말은 잠시의 눈속임이 되어

신앙에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이런 창조과학회의 거짓말들은 과학보다는

신앙에 더욱 큰 해를 입히게 됩니다.

 

거짓말이 탄로났을 때 교회 지도자들이

어떻게 변명해야만 배신감에 치를 떠는 신도들을

달래볼 수 있을까요?

 

아마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외칠 목사님들이

수두룩하게 나올 것 같군요.

꼭 그럴리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는 이유는

목사님들의 과학에 대한 배경지식은

그야말로 심각할 정도로 무지한 수준이거든요.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일반인들에 비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지만

특히나 전문 지식을 요하는 분야에서

목사님들의 수준이란 정말 갓난 아기 정도의

레벨에 불과하니까요.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는

믿음 하에 전문 분야에 대해 생각없이

내뱉어대는 소리들도 그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

설교하는 것과 동등한 권위를 인정받는 아둔한

한국 기독교계가 새삼 암담할 뿐 입니다.

 

창세기 설교를 하면서 창조론을

부르짖는 목사님이나 선교사님치고

실제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분은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 테지요.

생명의말씀선교회

대한예수교침례회

서울중앙교회

담임목사 이요한은,

주일 설교에서 진화론을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진화론.. 그거 아세요?

그거 완전히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마귀의 짓이란거 아세요?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지금도 그러한 일이 있어야 할 꺼 아닙니까?

동사무소에 인간 되었다고 호적 등록하러오는

원숭이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왜 지금은 그런 일이 없지요?"

 

일견, 과학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타당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대부분의 순진한 성도들은

무비판적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는거죠.

 

생물학과 진화론을 공부하고,

그 생물학적 증거의 방대함과 타당성을

직접 확인한(필자를 포함한) 사람들이 볼 때,

참으로 아연실색한 무식한 소리입니다 -_-*

진화론은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이론이 아닙니다.

 

진화론이 무엇인지,

더 넓은 범위로 과학에 대한

최소한의 사전지식이나 연구도 없이,

그저 자기의 머리와 배움에서 이해가 되지 않고,

자기가 해석해놓은 성경구절과 뭔가 안맞는다 싶으면

가장 먼저 꺼내드는 단어가 마귀입니다.

 

이것은 꼭 이요한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대부분의 무지한 목회자들의

시각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정말 믿음이 필요해서 교회를 찾는 사람이,

과학에 대한 저런 거짓말을 탐지하고

경악에 몸부림치며 교회를 빠져나온

예는 제 주변만 해도 적지 않습니다.

 

필자도 10년 넘게 봉사한 교회를 버린 이유가

과학에 대한 거짓말 때문 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진화론에 대한 거짓말이

당당히 주류로 자리잡고 있는 교회에서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진리를 말할 확률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겨우' 저런 사람을 통해서

자신의 말을 대언하게 할까? 라는 생각이 들자,

하나님이라는 존재마저 우스워 지더라구요.

특별히 과학자가 아니라고 해도,

창조론의 주장들을 제대로 살펴보고

분석해 본 기독교인이라면

창조론이 얼마나 엉터리이고

기독교를 황당하고 유치한 종교로

만들고 있다는 데 동조하게 됩니다.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생물들을 직접 지금처럼 만드셨다고 한다.

난 그걸 믿기로 한다. 끝!' 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믿는다고 하는 거죠.

더 이상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이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난 그걸 믿기로 한다. 끝!' 하고는

진정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남기시려던 메시지가 뭔지,

하나님이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는지,

성경에서 우리에게 전달하는 이야기가 뭘까를 고뇌하고

생각하는 과정은 무시하는 경우와 똑같은 이치입니다.

 

출처 : 창조과학의 거짓 / kitty

 

 

 

 

교회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목사 윤정수


태양신 교리의 유입
 교회사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갖기 위한 목적으로 이 글을 시작하면서 교회사의 주체에 대해 먼저 거론을 했었다. http://blog.daum.net/hyodoza/15437231 또한 초대교회의 진리와 초대교회를 거치면서 이방종교와 세상제도에 타협하여 변해가는 초대진리에 대해 공부하였다. http://blog.daum.net/hyodoza/16038408 어떤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든지 역사를 움직이는 중심이 있게 마련이다.






 성경을 통해서 바라본 역사의 중심 즉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세상의 역사가들이 어떻게 말하든지 세계의 역사는 하나님이 움직여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복잡미묘한 인간의 삶이 점철되어 있는 세계의 역사를 하나님이 움직여 간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성경의 역사는 예언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알고 있는 세상의 역사는 사건이 진행되고 난 다음 그 원인과 결과를 중심으로 기록해 두고 있지만 성경의 역사는 한가지의 실제적인 사실이 다음 일들을 예고하는 예언이 되어 또 다른 실체의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에덴동산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론의 예표가 되어 있다거나, 바벨론의 역사가 하나님을 배척하는 영적 마귀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는 등의 사실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역사는 지나간 일들 그 자체가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그뿐 아니라 성경의 구원관과 역사의 시각은 한 시대에 국한된 내용이 아닐라 인류역사의 시작에서부터 세사이 끝난는 시점까지 동일하게 하나의 맥을 유지해오면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보건대 변화무쌍한 인류의 삶이 예언대로 현실세계에서 성취되어지는 것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사실들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역사를 움직여 나가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우연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하나님의 섭리가 인류의 삶에 작용되는 것이므로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중심 즉 주체가 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말할수 있다.






아울러 성경의 말씀은 인류의 역사 특히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담겨진 예언적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말할 수 있다.




▶ 태양신 숭배에 대한 성경의 예언


 성경에는 많은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미 예언이 성취되어진 부분부터 예언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실들 또는 앞으로 진행되어질 예언들까지 모든 성경의 역사는 그 자체가 예언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시간에서는 많은 예언들 가운데서 태양신 숭배사상이 교회안에 밀려들게 될 예언, 특히 초대교회 이후로부터 교회에 침투하게 된 태양신 숭배에 관한 부분을 예언과 사실(사실)을 비교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초대교회 이후 기독교와 태양신교의 교리가 서로 접목되어 왔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교회에서 태양신을 숭배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믿기 어려운 일일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세우고 이방신들을 섬겨왔던 행위에 대해 엄청난 진노를 보이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성경의 역사를 통하여 잘 알고 있는 교회에서 또다시 우상숭배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금방 이해하기가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사실 현실 세계에서는 전세계 어떤 교회에서도 태양신을 숭배한다고 주장하거나 혹은 태양신을 찬양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교회는 없다.  그러나 성경의 예언 가운데는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하나님의 전을 등지고 동방 태양신에게 경배할 무리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경에 기록된 예언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예언의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않았을까?






 분명한 것은 성경의 예언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기준으로 볼 때 현재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가 태양신 숭배사상과 접목되어 있는 부분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약시대에는 각종 우상들이 이방신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침투해 왔지만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거룩한 행위를 가장하고 교회의 의식이나 교리 속에 침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양신 숭배에 대해 예언한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 내용들이 어떠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시대를 두고 예언한 것인지 충분히 알게 되었을 때 예언이 성취되는 실상을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는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동방 태양에게 경배하는 무리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먼저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이 가리키는 시대에 대해 이해를 하고 현실에 나타난 상황을 비교해 보아야 하겠다.






겔 8:14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겔 8:15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겔 8:16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보니 여호와의 전 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오 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
겔 8:17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강포로 이 땅에 채우고 또다시 내 노를 격동하고 심지어 나무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겔 8:18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아껴 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에스겔 8장의 예언은 마지막 시대에 있을 범죄한 교회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에스겔서의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끌어들여 예루살렘 성읍 안에서 갖가지 가증한 일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자들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9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부연하여 설명하자면 하나님의 성전이 가증한 우상들로 인해 더럽혀진 사실을 슬퍼하는 자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표시를 두겠다는 에언이다.  이 예언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성전이 우상으로 더럽혀지고 있다는 사실을 슬퍼하는 자들에게 이마에 표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표를 받지 못한 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들 즉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이마에 인을 치는 예언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시대에 대하여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짝으로 연결되어 있는 요한계시록 7장의 예언을 통해 보다 정확한 예언의 시기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7장의 예언을 자세히 살펴보면 해돋는 곳에서 올라온 천사가 하나님 백성들의 이마에 인을 친다는 예언으로 에스겔서 9장에 예언된바 가증한 일로 탄식하는 자의 이마에 표를 하라는 말씀과 동일한 예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에스겔서 9장의 예언이 성취되어지는 시기는 사방에서 일어나는 바람


계 7: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계 7: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으로 표상된 세계대전(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임을 알 수 있다.  세계대전의 바람이 불기 전에 하나님 백성들의 이바에 인을 쳐서 마지막 심판에서 보호한다는 예언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7장에서 시사하는 예언의 시대를 깨닫게 된다면 에스겔서에 등장하는 동방 태양에게 경배하는 자들의 예언이 어느 시대를 두고 예언한 역사인지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7장에서 설명하는 바람은 예언상으로 전쟁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렘 25:32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재앙이 나서 나라에서 나라에 미칠 것이며 대풍이 땅 끝에서 일어날 것이라


그러므로 사방에서 부는 바람을 붙잡아 두었음을 설명하는 말씀이다.  인류의 역사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있었지만 1차 세계대전은 땅 사방에서 발발된 전쟁이기보다는 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났던 전쟁으로, 사방의 바람으로 표현된 전쟁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방에서 불었던 바람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이 전쟁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인을 치기 위해 해 돋는 곳에서 등장하는 천사에 의해 일시간 붙잡히게 된다는 예언이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7장 1절부터의 예언은 마지막 시대에 대한 예언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에스겔서 9장에 이마에 표를 하는 역사 또한 마지막 시대에 이루어질 예언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에스겔서에 기록된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겔9:4)고 하였으니 8장의 말씀과 연결해서 보면 하나님의 성전에서 동방 태양신에게 경배하는 행위를 보고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하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통해 볼 때 마지막 시대에는 분명코 하나님의 성전에서 태양신과 같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교회에서 태양신을 섬기고 있는지 역사 속에서 진상을 밝혀야만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성경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위장하고 태양신을 섬기는 교묘한 마귀의 술책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교회사의 사명이라 할 것이다.














▶ 초대 교회에 접목되기 시작한 태양신 숭배사상


 태양신 숭배에 대한 역사는 고대 사회에서부터 그 뿌리를 찾아 볼 수 있다.  고대 농경 사회에서는 태양에 의해 한해의 농사가 좌우되었기 때문에 태양은 풍요의 상징이었고 농사를 주관하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져왔다. 그러므로 풍성한 소출을 얻기 위하여 태양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왔던 것은 전세계 어느 지역세서도 쉽사리 접할 수 있는 신앙의 형태였다.  성경의 역사와 좀 더 접근된 사회에서의 태양신 숭배 사상은 고대 바벨론의 종교에서부터 찾아 볼 수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바베론에는 니므롯이라는 권세 있는 왕이 있었다.


창 10: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창 10:9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창 10: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에게는 세미라미스라는 아내가 있었는데 니므롯의 권세를 등에 업고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왔다. 그러나 니므롯이 죽게 되자 세미라미스는 정적들의 반란이 두려워서 니므롯이 하늘의 태양이 되었다 하여 태양을 숭배하도록 유도하였고 그의 아들 담무스를 내세워서 니므롯이 환생한 것이라 속이고 모두가 담무스를 섬기도록 강요했다.


이와같은 바벨론의 태양신 숭배와 다른 혼잡한 신앙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에도 전파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우상숭배로 유혹하는 큰 걸림돌이 되어 왔다.


 태양숭배에 대한 습속들은 이집트의 역사에서도 뿌리가 되어왔던 신앙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태양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오벨리스크와 같은 탑은 다산(多産)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고대 태양 거석 문화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둥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날 기회만 있으면 숭배해오던 우상중의 하나인 주상(柱像)으로 설명되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져버리고 각종 이방신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중심을 흔들었던 대표적인 숭배의 대상이 태양이었다.  이러한 신앙적 습속들이 그리스도께서 전해주신 새언약의 복음시대에도 또 다른 모습으로 교회의 역사에 침투를 하게 되었다.


 당시 로마에서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미트라교가 성행하고 있었고 그에 영향을 받은 로마의 황제들은 황제숭배사상과 태양신 숭배를 대표적인 로마의 종교로 발전을 시켜왔다.  초기 기독교가 성행하고 있었고 그에 영향을 받은 로마의 황제들은 황제숭배사상과 태양신 숭배를 대표적인 로마의 종교로 발전을 시켜왔다. 


 초기 기독교가 로마로 전파될 당시에는 순수한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 출발이 되었지만 태양신 숭배의 습속이 강하게 뿌리를 내렸던 로마의 영향력으로 상당히 어려운 핍박과 시련의 과정을 거쳐왔다.


 진리를 고수하려는 초기의 신앙인들이 세상을 떠나고 그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오던 후대로 가면서 보이지 않는 가운데 로마의 종교적인 영향력이 서서히 교회에 침투하게 되었다.  기독교가 태양신 숭배사상에 대한 거부감을 떨쳐버릴 즈음 콘스탄틴 황제의 태양신 숭배사상이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 유입되어 왔다. 


 콘스탄틴은 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힘을 강하게 믿고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자신이 믿고 있는 태양신과 동일한 신으로 단지 기독교에서 다르게 칭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거론될 일요일 휴업령의 전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겠지만 콘스탄틴 황제가 일요일 휴업령에서 '존엄한 태양의 날에 관,공리와 모든 시민들은 쉬어야 한다'라고 명시했던 점들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콘스탄틴의 사상에 의해 교회 안에 잠재해 있던 많은 우상숭배적인 요소들이 합법적으로 교회의 정식 교리로 채택이 되기 시작했고, 교회에서는 태양신 숭배 사상으로 진리의 중심이 흐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 태양신 숭배의 그림자가 교회에 드리우다


 성경의 역사속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던 상황을 보면 우상을 섬기면서도 항상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생각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현재의 모든 교회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보여지는 현상들이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 많은 우상을 세워두고 있지만 그것을 우상으로 생각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다른 형태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로 보아 성전 안에 우상을 세워 두고서도 그것을 우상이라고 깨닫지 못하고 있는, 우상숭배에 대한 무감각함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교회 안에 세워지는 우상은 유형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형적인 것보다 더 차원 높은 우상의 형태는 하나님을 섬기는 규례 속에 우상을 세워두는 무형적인 것이 더 무서운 것이다.  교회안에 침투해 있는 대표적인 무형적 우상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전세계 교회에서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이라 하여 거룩한 축제일로 삼고있지만 그 절기의 실상은 로마의 농신(農神) 즉 태양신의 탄생을 축하하는 절기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대해 실증적인 자료를 통해 성탄절이 로마의 농신제일이었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알려지고 나서의 기독교계의 반응은 상당히 흥미롭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12월 25일이 로마의 농신제일이었다는 문제점을 반성하고 수정하기보다는 현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전세계가 축하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새언약으로 세워주신 안식일도 321년의 일요일 휴업령에의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되었어도 오히려 그것이 더 잘된 일인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현대 기독교인들의 이러한 생각에 대해 분별할 수 있는 가치의 기준점을 성경 속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고 성경의 역사는 우리들에게 진리에 대한 분별력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영도 하에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이르렀다.  이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기 위하여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셨고 40일동안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며 율법의 세부적인 내용을 가르침 받고 아울러 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을 받게 되었다.  이 때 모세의 생존을 확인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죽었을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론을 부추겨 그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게 하였다.


 출 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출 32: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출 32: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하였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나타난 우상에 대한 그들의 표현을 보면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면서도 우상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애굽 ?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이라'.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고 하였다.  이 사실은 우상숭배에 대해 무감각했던 당시의 상황을 통해 현재 우리의 신앙을 측량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라 말할 수 있다. 


이는 우상을 섬기게 되는 초기의 심리적 상태를 잘 지적해 주는 부분이라 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정한 날을 여호와의 절일이라 하여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패하였음을 보시고 진노하셨다고 성경은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역사의 가르침은 오늘날 교회에서 주장하는바 어떠한 날에 구애됨이 없이(그날이 태양신을 섬기는 날이었다 할지라도) 오로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이기만 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적 행위라고 말하는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해 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리되었을 때에도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왕은 북이스라엘에 거하는 사람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남유다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벧엘과 단에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왕상12:28)하여 금송아지를 섬기게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8월 15일을 유다의 절기와 비슷한 절기로 제정하여 금송아지에게 제사를 지냈던 역사는 우상 숭배에 대해 합리화시키고자 하는 그들의 논리성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증거는 현실에 나타난 교회의 상황을 또 다른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 부분이 없는지 각성시켜주는 산 교훈이라 하겠다.  외형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의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더라도 태양신을 섬기는 날을 정하여 그 날을 기념한다면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이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고, 자신들이 마음대로 정한 날을 일컬어 여호와의 절일이라 하여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위에 진노하셨다는 사실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어떠한 합리적인 이론을 앞세운다 할지라도 다른 날을 정하여 하나님의 절일이라고 명명하거나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의 생각에 따라 금송아지와 같은 우상으로 만드는 행위는 하나님께 대항하는 용서받지 못할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행해지는 신앙적 행위의 배경 뒤에 태양신 숭배에 대한 흔적은 없는지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외형적으로 아무리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처럼 보여지는 교회라 할지라도 태양신 숭배에 대한 흔적이 있다면 이는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바 하나님의 성전을 등지고 동방 태양에게 경배하더라는 예언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태양신을 경배하고 있다는 사실로 결론지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기초로 하여 초대교회 당시에 나타난 태양신 숭배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을 밝혀 보고자 한다.


 ▶ 태양신 탄생일이 예수님 탄생일로


 예수님 탄생일이 12월 25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역사서에는 물론이거니와 최근에는 매스컴을 통해서도 공공연하게 알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적으로는 354년의 기록에 12월 25일이 예수님 탄생일로 제정이 된 배경에는 태양신에 대한 경배사상이 교회 안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로마에서는 12월 들어 태양신 즉 미트라의 출생을 기념하는 큰 축제일이 있었다.  첫째는 새터날리아 제일이라 하여 17일부터 일주일 동안 농경신 새턴을 기념하였고, 12월 25일은 로마에 널리 전파되었던 미트라교 즉 태양신을 숭배하는 사상으로 기념되어 왔던 브루말리아 제일이었다. 


 이는 동지제로서 태양의 탄생을 축하하는 절기였다.  당시 태양신 숭배자들의 생각으로는 일년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아지는 동지에 태양이 태어났다고 믿고 있었다.  이 후로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는 것은 태양이 태어난 동지 이후로 태양의 힘이 점차적으로 강해지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로마 전역에 미트라교에 의한 동지제 축하행사가 대규모의 축제로 기념이 되어왔었지만 초기 기독교인들은 신앙적 차이로 인해 이 축제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아울러 예수님과 태양신을 동일시하려는 자들을 이단으로 지목하고 성전 안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을 찬양하는 자들을 강력히 비난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진리를 수호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해지고 태양신 축제에 가담하지 못함으로 주위로부터 핍박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다른 의미로 로마인들의 축제에 가담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 되었고, 또 교회의 세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의미에서도 동지제를 기독교화 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거룩한 태양이라는 주장이 교회안에서 강하게 대두되기 시작했고 초기 교회 안에서 비판을 받아 왔던 태양신에 대한 사상들이 차츰차츰 기독교 교리와 접목되어갔다. 그리하여 교회에서는 태양 탄생일인 12월 25일을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하고 공식적으로 축하하는 절기로 삼아 로마의 태양신 숭배자들을 교회 안으로 흡수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12월 25일(크리스마스)이 되면 서로서로 선물을 나누는 풍습도 로마의 농신제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로마에서는 시길라리아 제일이라 하여 12월 하순이면 어린아이에게 인형과 같은 선물을 나누어 주었던 신앙적인 습속이 있었는데 이러한 풍습이 계승이 되어 기독교 안으로 유입이 되어 기독교적인 풍습으로 변모되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푸른 나무에 갖가지 장식으로 꾸미게 된 크리스마스 트리의 풍습조차도 이교주의적인 풍습이 계승된 것이다.


 고대 바벨론이나 이집트, 로마 등지에는 사철 푸른 나무에 대한 샤머니즘적인 숭배사상이 있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새해가 되면 악마를 물리치기 위하여 집과 주변을 상록수로 꾸며왔던 주술적인 신앙의 형태가 있었고, 고대 바벨론에서는 죽은 나무에서 솟아난 새 상록수를 담무스안에서 니므롯이 살아있는 것인양 유포하여 상록수를 숭배하도록 하였고, 이집트에서는 종려나무, 로마에서는 전나무를 거룩하게 구별하고 농신제 기간동안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열매를 장식하여 태양신을 숭배하는 신앙적 행위로 기념해 왔던 것이다.


 이와같은 태양신 숭배의 풍습들이 12월 25일이 예수님 탄생일로 제정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 흡수되어 미트라의 축제일 자체를 완전히 기독교의 축제일로 변경시키게 되었고 태양신을 섬기는 이교도들조차 기독교에 접목시킬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이로 보건대 전세계가 축하하는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가 아니라 태양신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제일이 거룩한 너울로 가장하여 교회 안에 유입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볼 때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했던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이라 할 수 있는 교회안에서 태양신을 섬기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 보건데 하나님의 예언은 일점일획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전 세계의 교회에서 성대한 의식으로 축하되는 크리스마스와 같은 절기는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동방의 태양신을 숭배하는 가증한 신앙의 행위임을 알 수 있다.  다음 시간에서는 교회가 태양신을 섬기는 또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는 일요일 예배와, 교회 안에 유입이 되어 있는 이방신의 흔적들을 교회사 속에서 살펴보고 그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상은 인터넷에 올라 있는 목사 윤정수의 글입니다. 위의 글을 읽어 보면 초기 기독교에서는 야훼를 태양신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역사를 왜곡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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